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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수행평가 : 개고기 찬반논쟁

개고기 찬반논쟁으로 사회 수행평가를 제출했던 문서이다. 중학교 때인지 고등학교 때인지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아들의 사회 수행평가였던 개고기 찬반논쟁에 관한 글을 정리했던 내용이다. 필요한 사람은 가져다 쓰도록 한다.

 

이슈의 배경

매년 복날을 전후해서 개고기 식용 문제는 연례행사처럼 첨예한 찬반양론을 불러온다. 이 문제는 찬반론자 간에 절충이나 타협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결론을 내리기가 더욱 어렵다.

 

2001년 동물보호론자인 프랑스 여배우 브리짓 바르도가 한 라디오 프로그램 인터뷰에 출연한 것을 계기로 개고기 식용에 찬성하는 여론이 다소 우세했던 것으로 분석된다. 브리짓 바르도는 당시 인터뷰에서 개고기 문화를 비판하면서 한국인을 야만인으로, 개고기를 먹는 동양 나라들은 문화적으로 열등한 국가로 매도했다. 이것이 한국인들의 공분을 사면서 중학교 교과서부터 대학교 교양강좌 교재에 이르기까지 브리짓 바르도의 일회는 자문화중심주의의 표본처럼 수록됐다. 개고기 식용 금지론은 일부 애견인의 주장에 머물렀고 문화상대주의가 개고기 논란의 프레임을 지배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단순히 동물애호가들의 목소리를 넘어서 육식 반대와 같은 생태학적 관점에서 개고기 식용을 금지하자는 주장도 늘어나고 있다. 서구의 오피니언 리더를 중심으로 환경보호와 기아 문제의 해결, 건강한 삶을 위해 극단적인 채식주의를 고집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우리나라에서도 채식주의가 새로운 문화코드로 떠올랐다. 고기를 생산하고 도축하는 과정에서 이산화탄소와 환경 유해 물질이 많이 발생할 뿐만 아니라 빈민국의 국민들이 소비해야 할 곡물을 소나 돼지들이 먹어치우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계식주의 내지 육식 절제론이 "소나 돼지는 먹으면서 개를 먹지 말자는 이유가 무엇인가"라고 묻는 개고기 찬성론에 맞서 효과적인 반론을 제기하고 있다.

 

 

이와 함께 등물의 생명권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것도 개고기 논쟁과 무관하지 않다.

 

얼마 전, 자동차 뒤에 개를 묶어 끌고 다녔던 운전자가 네티즌들의 거센 비판을 받으며 겅찰의 수사로까지 이어졌다. 또한 최근 과학적 조사를 이유로 고래를 잡을 수 있도록 하겠다는 한국 정부의 방침에 세계 각국의 비난이 쏟아지자, 대부분의 언론에서도 국제적 조류에 따라 포경을 금지하는 것이 옳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이처럼 개고기 식용 문제는 문화제국주의와 문화상대주의, 생태학과 보편주의, 동물의 생명권 등 상이한 사회/철학적 관점이 충돌하는 지점이다.

 

개고기 찬성론-문화 상대성 이해해야

개고기 식용반대론은 서구인들의 시각에서 비롯됐다. 현재 개고기를 먹는 나라는 한국, 중국, 베트남 등으로 한정된다.

 

그러나 역사척으로 프랑스, 이탈리아, 아프리카 등 전 세계에 걸쳐 수많은 사람들이 개고기를 먹었다는 문헌 기록이 존재한다. 심지어 1910년겅 프랑스 파리에는 개고기 정육점이 실존했다. 그러던 서구 사회가 전후 번영을 누리면서 생활에 여유를 갖게 된 사람들이 개나 고양이 등 애완동물을 취미로 키우며 가족과 같은 유대감을 형성하게 된것이다.


반려견의 생일을 챙기고 장례식까지 치러줄 정도로 애정이 깊은 서구인들이 개고기 문화를 점하면 불쾌감을 느낄 법도 하다.

 

하지만 문화적 낮설음에서 비롯된 그러한 감정을 넘어 다른 나라의 음식분화를 비난하고 수정하려 드는 것은 주제넘은 일이다. 인간의 문화는 민촉과 언어, 종교, 기후, 지리 등 수많은 맥락에 따라 다르게 발전하므로 문화가 서로 다르다는 이유로 비난할 수는 없다.

 

문화상대주의적 인식 틀에 따르면 개인의 인식과 행위는 각 분화의 맥락에 따라 평가해야 한다. 한반도에서 개고기를 먹었다는 역사는 그 기원을 가늠하기 어려을 정도로 오래되었다. 개는 소나 돼지, 닭처럼 걸러서 잡아먹던 가축의 하나에 지나지 않았다. 특히 보릿고개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수천 년 간 만성적인 영양부족 상태에 있었던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개는 중요한 단백질 공급원이었다.


식인문화가 용인되지 않듯, 문화상대주의를 넘어 보편적으로 추구해야 하는 정서가 있는 것 아니냐는 반론도 있다.

 

동물에게도 생명권와 고통 받지 앓을 권리가 있다는 주장이 이와 비슷한 맥락이다. 하지만 사자가 가젤을 잡아먹둣 잡식성 동물인 인간이 먹이사슬의 하위에 있는 동식물을 섭취하는 것은 오히려 보편주의에 합당하다. 물론 사육 도축할 때 동물의 고통을 줄여줄 방법을 지속적으로 연구 이행해야 할 것이다.

 

아울러 개가 소나 돼지 등에 비해 인간과 더 가깝기 때문에 더 우월한 권러를 보장해줘야 한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소는 물론 사자와 같은 맹수도 길들여지면 주인을 따른다. 또한 동물학자들에 따르면 상식과 달리 돼지가 개보다 지능이 높다고 한다.

 

 

오늘날 한국은 세계 10워권의 경제대국으로 도약하며 문화생활 수준이 선진국과 가까워졌다. 애견 인구도 수백만 명에 달한다. 이러한 국격과 위상에 어울리도록 이제 개고기를 금지해야 할 때라는 주장도 나온다.

 

그러나 이는 ‘조국 근대화를 이룩하려면 초가집을 때려 부수고 콘크리트 양옥을 지어야 한다' 는 주장처럼 사대주의적이다. 서구적 시선을 빌어 자신을 스스로 타자화/주변화하는 것은 전형적인 오리엔탈리즘이다. 오늘낱 개고기 에호가들은 단백질 부족보다는 미식을 츨기기 위해 비싼 개고기를 즐긴다.


개고기 식용의 근거 없는 죄책감보다는 위생적이고 품질 좋은 개고기 관리에 힘을 기울이는 것이 자연스러운 방향이다.

 

개고기 반대론-개에게도 보편적 권리 존재

문화척 상대성을 인정해야 한다는 주장은 외국인들이 우리나라의 개고기 식용 문화를 비판할 때 가장 흔히 제기했던 대응 논변이다.

 

가령 프랑스인들을 포함해 많은 서구인들이 잔혹한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 푸아그라(거위 간 요리)를 즐겨 먹으면서 어떻게 남의 나라 개고기 문화를 비판할 수 있냐고 항변한다. 그러나 이러한 반박은 논리학에서 말하는 ‘역공격의 오류' 를 범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주장의 설득력이지 그러한 주장을 한 사람의 태도나 그가 속한 사회가 아니다.


1930년대 미국의 인류학자 루스 베네딕트로 대변되는 문화상대주의는 서구 사회의 가치 기준에서 타 문화귄을 인식하기보다 각 문화권의 특수성을 선입견 없이 받아들이고 이해하려는 노력이었다.

 

하지만 문화상대주의는 20세기 들어 국제적인 논란에 휩싸이게 된다 2차 대전 후 유엔(UN)은 홀로코스트와 같은 반인륜적 범죄를 방치하고 국제인귄 기준을 제시하기 위해 '국제인권선언’ 을 채택하려 했다.

 

그러나 소련을 중심으로 한 공산권와 중동국가 등 인권이 열악한 국가들은 미국의 지본주의/자유주의적 정치질서와 기독교적 가치를 보펀적 가치로 전제하고 있다며 비난을 퍼부었다. 이른바 '종북주의자’ 들이 인권이 존재하지 않는 북한 체제를 옹호할 때 적용하는 내재적 접근법 도 전형적인 문화상대주의 프레임이다.


문화적 상대성이 용인되기 위해서는 도덕적인 문제를 야기하지 않아야 한다. 인간이 아닌 동물에 대해 차별을 정당화하려는 태도를 종차별주의라고 한다.

 

이는 성차별이나 인종차별과 다를 바 없는 근거 없는 차볕이다. 인류는 노예부역이나 홀로코스트, 서구 제국주의 식민통치와 같은 도덕적 시행착오를 반성하며 진보해왔다. 그러면서 장애인이나 아동에 대한 인권, 여성의 평등한 참정권 등 보편적 가치를 쟁취해왔다. 그 다음 단계는 인간처럼 감정과 고퉁을 느끼면서도 인간에게 유린되 왔던 동물에게 귄리를 돌려주는 것이다.

 

인간에게 친숙한 동물인 개야말로 동물 권리 보호의 상징이 되기에 적합하다. 하지만 유독 한국에서 개를 지옥 같은 환경에서 사육하고 잔인하게 도살하고 있다.

 

 

개고기 식용을 찬성하는 사랍들이 타협안처럽 내세우는 주장 가운데 하나는 반려견과 식용견을 구분해 오직 식용견만을 먹으면 그다지 문제될 게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의 사랑을 받으면 반려견이고 운이 나쁘면 식용견이 될 뿐, 이 둘을 처음부터 구분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이는 어떤 사람은 오로지 장기를 기증하기 위해 태어났다는 말과 비슷하다.

 

고기가 많이 나오고 값이 싸다는 이유로 특정한 견종이 식용으로 많이 쓰이기도 하나 언론 보도에 따로면 유기견이나 병들어 죽은 개까지 식용으로 쓰이고 있어 문제가 되고 있다.


다른 고기는 모두 먹으면서 개고기는 안 되느냐는 비판은 정당하다. 소나 돼지, 닭도 고통을 느끼기 때문이다. 궁극적으로 우리는 개뿐만 아니라 다른 가축의 생명도 빼앗아서는 안 된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극소수의 채식주의자를 제외하면 절대 다수의 사람들이 소와 돼지, 닭을 즐겨 먹고 있다. 미래에 고기의 맛을 완벽하게 내는 대체 음식이 나타나기 전까지, 인간에게 고기를 먹지 않게 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자비로운 도살은 그 차선책이다. 그렇지만 우리가 육식의 관행을 막지 못한다고 해서 다수가 관행적으로 먹는 돼지, 소, 닭 이외에 개를 육식의 목록에 추가할 필요는 없다. 육식을 거부하는 입장에서 개고기 판매 반대 운동을 전개한다면 설득력이 배가 될 것이다.

 

정부가 개고기 논란 종결 나서야

비위생적인 도촉와 유통 환경을 개선해 개고기를 양지로 나오게 하든가, 세계적인 추세에 따라 개고기 식용을 완전히 금지하든가 하는 것이 정부의 할 일이다.

 

현행법에 따르면 개는 축산법상 가축에 포함되지만 축산물위생관리법에는 가축에서 빠져 있다. 하지만 작년 9월 식품의약품안전청이 일부 개고기 음식점을 대상으로 위생에 관한 헹정처분을 내린 것을 블 때, 식품위생법에서는 개고기를 엄연히 식품으로 인정하고 있는 상황이다.

 

다시 말해 ‘완성된 보신탕'은 식품으로 인정하되, 개고기 자체는 축산물로 블 수 없어 도축 빛 가공 과정은 법으로 관리하지 앓겠다는 것이다.

 

이처럼 개고기틀 둘러싼 일관성 없는 관런법과 찬반논란이 귀찮아 결정을 미루는 정부의 자세가 수십 년간 이어지며 개는 고통을 받고 소비자는 건강을 위협받고 있다. 한해 300만 마리의 개가 식용으로 유통되는 현실에서 정부는 속히 조치를 취해야 할 것이다.